소드마스터라는 명칭은 종종 허접한 양판소에서나 쓰이는 것으로 종종 오해받기도 하지만 앞서 말했듯 검술 스승이나 검의 달인을 가리키는 칭호로 쓰였으며, 중-근대 소설에서도 틈틈이 쓰이기도 한 선례가 있는 전통있는 용어로 몽테크리스토 백작 완역판에도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파리의 소드마스터를 죄다 꺾어버렸다는 대목[15]이 나오며.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퍼스트 버전)에서는 3레벨 전사의 칭호(1레벨: 워리어, 2레벨: 베테랑, 3레벨: 소드마스터)기도 하다.
양판소가 널린 일본이나 한국이나 잡다한 양판소에서 볼 수 있으며 소드마스터 시리즈에서 카메라에 잡힌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국내 양판소의 소드마스터의 시초는 카르세아린으로 여겨진다.
이말년씨리즈에서도 나왔다. 취급이 좋지는 않지만.
온갖 무기에 통달했던 현실의 소드마스터처럼 다른 무기의 칭호를 붙여도 문제는 없지만... 압도적인 간지 차이 때문인지 스피어마스터나 액스마스터, 메이스마스터, 보우마스터 같은 게 나오는 작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블레이드 마스터는 있지만 그게 그거다.
소드마스터라는 칭호는 판타지 소설의 클리셰 취급으로 도검제일주의나 양판소들 때문에 까이는 경향이 크긴 하지만, 달인이라는 의미의 소드마스터라는 칭호는 서양 검술에 실제로 칭호가 내려진 적이 있는 진짜배기 칭호다.
14세기에서 16세기 사이,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검술 길드인 성 마르쿠스 형제단(Marxbrüder)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니 3세로부터 "장검의 달인(Meister des langen Schwerts)", 영어로 하면 'Master of Longsword'라는 칭호를 독점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허락받았다. 독점이라 말해 이해가 힘들 수도 있겠지만 쉽게 말하면 마르쿠스 형제단에서 인정한 장검 사용자는 상술한 신성 로마 제국이 공인한 칭호를 마르쿠스 형제단에서 받을 수 있었다.
16세기 영국에는 헨리 8세에 의해 공인받은 검술가 단체 'Company of Maisters of the Science of Defence(방어의 과학 마스터회)[1]'가 존재했었는데, 검술 길드와 비슷하게 소속된 구성원의 실력을 시험해 등급 분류를 하고, 검술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 검증하는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다.[2]
제일 하급은 스콜라, 스콜라로 7년 이상 수련하면 그 윗 등급인 프리 스콜라로, 프리 스콜라에서 7년 이상 수련하면 프로보스트가 된다. 프로보스트 등급에서부터 제자를 받고 가르칠 수는 있으나 아직 독립할 정도는 아니었고, 프로보스트에서 까다로운 검증을 통해 입증받은 인물만이 비로소 마이스터가 되어 독립할 수 있었다.
프랑스 역시 1567년 프랑스왕 샤를 9세가 세운 'Académie des Maistres en faits d’armes de l’Académie du Roy', 줄여서 '프랑스 검술 학파'(사실상 길드)는 프랑스혁명 이전까지 파리를 대표하는 프랑스 검술 스승의 단체로 명성을 날렸는데, 검술 교실의 독점권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루이 14세는 학파의 상급 마스터 중 6인에게 귀족 직위를 부여하기도 했다. 귀족 직위를 받은 마스터가 마스터 자리를 내놓거나 별세하면 길드 소속 다른 마스터에게 귀족 직위가 전해지는 형식이었다. 검의 시대가 저물었어도 결투를 위한 검술을 배워야 했던 프랑스 귀족들은, 평민이나 하층민 계급에게 검을 배우는 것이 품위를 떨어뜨리는 짓이라고 여겼기에 자신들의 검술 마스터를 상류층으로 대접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의 격을 높였다. 루이 14세가 귀족 직위를 마스터에게 부여한 것은 아예 명문화된 케이스다.
스페인 왕은 15세기부터 수석 마스터 심사관(maestro mayor y examinador)이라는 직위를 가진 마스터를 임명해서 왕국 내의 모든 검술 마스터들의 자격 검증을 감독토록 하였다.
다르디 검술 학파(또는 볼로냐 검술)를 위시한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검술 유파에서도 엄격한 사승 관계를 통해 검술을 전수했으며, 스승 된 자격이 있는 검증된 검술의 달인을 마에스트로라고 불렀다. 물론 르네상스 이탈리아 검술이 워낙 폭발적으로 유행하다 보니 '자칭 마스터'가 흔히 나오긴 했지만, 볼로냐 검술 같은 유명한 유파는 유럽 전역의 마스터들과 마찬가지로 각 도시, 혹은 왕으로부터 검술 교실을 세우기 위한 라이센스를 받아 실력을 검증받은 마스터들이었다.
이러한 전통이 유럽 전체에 쭉 물려내려와 대부분의 유럽 주류 국가에서 검술 스승/검의 달인을 마스터라고 칭했다. 보다시피 검술 스승은 왕가나 귀족과 관련되는 일이 흔했고(직접 가르치거나, 혹은 후원을 받거나) 또한 마스터라고 공인받아야만 사업권(검술 교실 개설권)을 얻을 수 있으므로 검술의 마스터라는 단어는 엄격한 실력 검증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명예로운 칭호였다.
즉 칼 한 번에 일타삼피는 기본으로 행하는 현재 흔한 양판소의 검성관 달리 실제 중세 유럽의 소드마스터는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적은 2~3명 정도였다. 중세 검술의 시조 요하네스 리히테나워는 '바보 같은 짓 하지 마라, 넷에서 여섯 명의 적에게 대항하지 마라, 자만심을 억눌러라, 동수의 적과 싸우는 자는 용감한 것이지만 4~6명의 적과 마주쳤을 때 도망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고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이 내용에서 알 수 있듯 소드마스터는 만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초인이 아닌 그저 잘 싸우는 인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 2~3명이라고 한 대상은 당연히 동네 불량배가 아니라 동등한 실력의 검객/기사나, 동급의 실력자들을 칭하는 것이다. 즉 자기보다 아래라면 정예 훈련을 받은 기사라 하더라도 2~3명 정도는 혼자서 상대한다는 뜻이다.
소드마스터라서 검만 잘 다룰 것 같지만,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검술 유파에서 가르치는 무술은 일반적인 단병접전, 명예를 지키기 위한 1대 1의 결투 검술, 법정에서의 재판 결투, 암살자의 암습에 대처하는 맨손/단검/급조 무기 무술, 민간 개인 호신 검술과 군용 검술 양자에 두루 쓰이는 한손검과 양손검, 방패, 창, 도끼(폴암), 쿼터스태프, 레이피어, 단검, 갑주를 입고 싸우는 갑주 전투술, 기마 무술, 집단전투 등등 다양한 상황을 전제하고 있었고, 그래서 실제로는 검 이외의 각종 병장기나 싸움방식에도 능숙해야 했다. 다만 롱소드의 달인 같은 식으로 검술이 대표적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아무래도 검술 시스템이 다른 무기를 포괄하기 좋은 무기술의 근본이었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의 기사들도 마찬가지. 항상 옆에 칼이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 시기 소드마스터는 사실상 검이 주전공인 웨펀 마스터라 칭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제로니모 산체스 데 까란싸: 16세기 스페인 검술 마스터다. 이탈리아식 레이피어나 프랑스식 스몰 소드와 차별되는, 스페인식 레이피어 검술인 '라 베르다데라 데스트레싸'[12]의 창시자이다. 까란싸로부터 비롯한 스페인식 검술인 데스트레싸는 상대에게 쭉 뻗은 롱포인트 자세로 견제하고, 대각선과 측면 이동으로 상대 공격을 회피하는 동시에 공격하는,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고 공격을 유도하는 검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검술 이론을 전개할때 간합과 이동과 공격의 상관관계를 기하학적으로 해설하는 스패니시 서클[13] 때문에 마법진 검술로 더 악명높다. 사실 기하학적인 검술 이론 해설 자체는 이탈리아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루이스 파체코 데 나르바에스: 16~17세기 스페인 검술 마스터.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검술 스승이었다. 까란싸의 제자로 데스트레싸를 배웠으며, 초년에는 까란싸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갔지만 후에 연구를 거듭하여 독자적인 기풍을 세운다. 이로 인해 데스트레싸 검객들은 까란씨스타(까란싸 스타일을 유지)와 파체퀴스타(파체코 나르바에스를 따르는 자)로 나뉘게 된다.
파체코는 1608년에 당대의 시인이자 검객인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와 결투를 했는데, 한 칼에 파체코의 모자가 벗겨져버리는 꼴사나운 결과가 나왔고 케베도는 이를 두고두고 놀려먹으며 두 사람은 평생의 원수지간이 된다. 케베도의 소설에서 '숙련된 군인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수학적 계산을 동원하는 검객' 운운하는 이야기가 데스트레싸 검객인 파체코를 놀리는 것. 참고로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가 바로 알라트리스테에 나오는 안경낀 시인 그 양반이다.
디오고 고메스 데 피게레도: 17세기 포르투갈의 군인이자 외교관이며 검술 마스터다. 젊은 시절부터 까란싸 계열 데스트레싸를 배웠고 실제로 첫 검술 서적은 데스트레싸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이들어 포르투갈 독립을 지지하는 열정적인 포르투갈인의 성향을 드러냈으며, 군인으로 포르투갈 독립 전쟁에 참여했고 검술 역시 스페인의 영향이 강한 데스트레싸를 버리고 고전적인 몬탄트(이베리아 지방의 양손검) 검술서를 저술하였다.
테스트레싸 일변도인 이베리아 지방에서 보기드문 양손검 검술이라 참고할만하다. 또한 검술의 기술 자체도 간결하면서 상당히 특이한 점이 많아 재미있다. 창대를 뛰어넘으며 공격하는 점프 회전베기라든지, 전후방 포위 상태를 가정하는 것, 직선 통로에서 다수를 상대로 쭉 밀고나가는 법, 여성을 등 뒤에 놓고 보호하는 기법, 발치에 쓰러진 동료를 보호하는 기법 등등. 자세히 보면 은근히 포르투갈 봉술 조고 도 파우와 관련있어보인다. 조고 도 파우가 좀 심하게 폴짝거리기는 하지만...
기타 스페인/이베리아 마스터: 기랄드 티바울트, 프란시스코 로렌초 데 라다, 니콜라스 타마리즈 등등. 대부분 데스트레싸 검객인데, 스페인에서는 데스트레싸가 대두된 이후 300년간 검술계를 주도해나가면서 구식 검술의 전통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피게레도가 한때 데스트레싸 검객이기는 했으나 전통식 양손검 검술을 알아서 데스트레싸 일변도를 벗어난 형태를 보여주고, 그 외에도 하우메 폰스, 페드레 데 라 토레, 프란시스코 로만 등의 비-테스트레싸 검객이 있으며 직간접적으로 발굴되는 검술 사료를 통해 데스트레싸 이전의 스페인계 검술[14]를 복원하려는 시도 역시 존재한다.
조지 실버: 16~17세기 영국 검객이다. 마스터로 보기는 좀 그런게, 런던의 컴패니 오브 마스터 소속도 아니고 전문 검술 강사도 아닌, 검술 좋아하는 젠틀맨 계급의 신사였다. 당대에 유행하던 이탈리아식 레이피어 검술을 지독시리 싫어했으며, 전통있는 영국식 소드 앤 버클러 검술을 칭송하고, 검술에 대한 글 2편을 써서 아가리 파이팅과 실제 대결을 통한 현피를 뜨기도 했다. 당대의 유행에 역행하기는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검술 시스템은 대결, 길거리 싸움, 전장 모두에 적합하고 아주 합리적인 것이라서 읽어둘만하다. 사실 아주 극단적인 취향 문제인 부분을 제외하면 그가 한 말 중에 별로 틀린 부분은 없다.
도미니코 안젤로: 18세기 영국 런던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출신 마스터다. 이탈리아 사람이 프랑스식 스몰소드 검술을 영국에서 가르쳤다는 점에서 어느 계열로 구분해야 할지 미묘하다. 당시 영국에서 대륙식의 우아한 스몰소드 검술을 제대로 배우려면 대륙까지 찾아가야 했으나 도미니코가 검술 교실을 열면서 영국 내에서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영국 왕실의 검술 스승이기도 하다.
아들이자 마찬가지로 검술 마스터인 헨리 앤절로를 통해 영국 내의 검술 전통에 상당히 큰 영향을 남겼다.
기타 영국 마스터: 스코틀랜드식도 포함해서, 조지프 스윗넘, 윌리엄 호프, 도널드 맥베인, 토머스 페이지, 헨리 앤절로, 토머스 매슈슨, 제임스 밀러, G. 싱클레어, 앨프리드 허턴, 잭 처칠 등등.
또한 실버 이전의 중세-르네상스 초 검술 사료 3점이 존재해서 이를 통해 영국식 중세 검술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있다.
고야